에릭 로메르 | 가을 이야기 | 1998

“유쾌한 로맨스” 이야기가 선택할 수 있는 많은 방식 중 하나 – 사랑에 서툰 주인공들, 그를 돕기 위한 친구들, 엇갈리는 오해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깨달음과 해피엔딩 – 를 가을 이야기도 택하고 있다. 만약에 이 영화에 대해 매력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카메라의 시선이 될 것이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그리 많이 움직이지 않는다. 혹은 대화가 길게 이어지다 끝나고 한 인물이 그 공간을 떠나 멀리 떠나가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시선을 돌려 떠나가는 이를 멀치기 바라볼 뿐이다. (비록 촬영할 때에는 말하는 이와 듣는 이와 모든 사람들을 찍은 다음 편집하지만) 수많은 대화 장면에서 카메라는 갑자기 쇼트에서 역쇼트로 가기를 주저하고 말하던 사람의 얼굴을 계속 바라본다. 그리고 상대방이 무언가를 말하는 것을 듣는 모습까지 지켜본다. 이 주저함, 혹은 망설임은 카메라의 의무, 그러니까 관객에게 이 가상의 세계를 기계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태도를, 많은 영화에서 보이듯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더 오랫동안 바라볼 뿐, 그 안으로 한 발짝이라도 더 나아갈 시도는 하지 않는다. “나는 이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관여하지는 않겠어. 그러나 최소한 내가 원하는 만큼, 저 대화와 풍경을 조금만 더 바라보고 싶어.” 그러니까 영화는 머뭇거림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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