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양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1991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 그러니까 1959년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긴 자막이 짧게 지나가는 순간 이전의 화면은 크게 세 개의 쇼트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쇼트는 샤오쓰의 아버지와 선생이 상담실에서 그의 국어 성적이 좋지 않으므로 야간반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다.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상담실 밖에서 상담실을 찍고 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카메라가 상담실 ‘안’을 찍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카메라는 반쯤 상담실을 걸쳐서 그 안을 보는 둥 마는 둥 앵글을 잡아놓았다. 둘의 대화 소리는 상담실 안에서 새어 나와 녹음된다. 하지만 그 둘이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찍히지 않는다. 그저 우리는 그 안에서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서 유추할 수 있는 두 인물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까 카메라는 우리가 그 쇼트의 불완전한 형태를 인식하고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짐작할 수 있는 수준에서 멈추어 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두 번째 쇼트는 샤오쓰가 상담실 밖 의자에 앉아서 둘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이 순간에 카메라는 샤오쓰를 가능한 중앙에 놓고 찍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동시에, 프레임 구석에 잡혀있는 것은 그 공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복도의 모습이다. 그 쇼트의 구도는, 마치 샤오쓰가 그 공간에서 도망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를 막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세 번째 쇼트는 대만의 어느 밝은 길거리를 찍고 있다. 초점은 저 멀리까지 딥 포커스로 맺혀 있고,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은 채 그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응시한다.

이 세 개의 쇼트는, 영화가 1961년 대만이라는 과거의 시공간으로 되돌아가 사건을 재구성하기 위해 취할 전략을 요약한다. 혹은 관객이 이 4시간이라는 고된 여정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밧줄과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는 (개봉한 연도를 기준으로) 30년 전의, 샤오쓰라는 소년이 샤오밍이라는 소녀를 죽이게 된 그 인과를 우리들 앞에 풀어놓을 생각이 없다. 오히려 여러 단계의 벽으로 가로막힌 진상의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그냥 그 가로막혀져 있는 상태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데에 집중한다. 그래서 영화는 꼼꼼하지만, 영화 속 세계를 재구성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많은 요소는 각기 벽을 세우며 관객이 그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방해한다. 관객이 가장 먼저 느끼는 벽은 아마 빛과 어둠의 대비일 것이다. 샤오쓰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빛에서 어둠으로 굴러떨어진 인물이다. 성적이 나쁘지 않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주간학교에서 야간반으로 옮기게 된다. 불안정한 대만 사회에서 학생들은 폭력 조직을 만들어 싸움을 벌이기 일쑤다. 그는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그 싸움판 안으로 자연스럽게 말려 들어가게 된다. 그는 학교 옆 촬영장의 손전등을 훔치고,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 계속 그 손전등을 놓지 않는다. 언제나 어둠 속에서는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 그는 손전등을 들고 다니는 것으로 자기방어를 수행한다. 영화는 의도적으로, 어둠을 어둠 그대로 놔두고 영화를 찍었다. 짙은 어둠 속에서 농구공이 튀어나온 다음 싸움이 일어나는 장면은 전적인 예시다. 물론 여기까지는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많은 청소년-성장물의 플롯은 주인공이 “어둠에서 빛으로” 빠져나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부는 완만하게(결코 ‘느린’ 것이 아니다!) 샤오쓰의 세계의 어두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다음 이어져야 할 내용, 즉 비극으로 영화가(혹은 영화 속 세계가) 던져넣은 그를 빛으로 빠져나오게 하려고 영화는 그를 끌어당길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혹은 그에게 어떤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실 샤오쓰가 주인공임을 선언하자마자 갑자기 카메라는 그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그가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 듯 이야기를 찍어간다. 마치 종군기자처럼, 그 공간과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최대의 목적인 양 구는 것이다.

겹겹이 쌓인 벽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그곳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면) 문이라는 개념을 수반한다. 아마도 영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은 인물들이 문을 지나가거나 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일 것이다. 영화가 다루는 물리적 공간은 상당히 넓지만, 이 수많은 벽과 문 때문에 스크린 너머에서 체감하는 크기는 실제보다 좁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런데, 영화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쉬지 않고 어딘가로 걸어가고 뛰어가고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인물들의 움직임은 그들이 광활한 공간 안에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이 좁고 미로 같은 공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기묘한 폐쇄성은 관객으로 하여금 미스터리에 대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게 만든다. 예컨대 어떤 질문을 던졌을 때,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피하는 듯한 태도. 제목에서 시작되는 질문 – 그러니까 샤오쓰는 누구를 왜 죽였는가? 라는 질문이 나오려는 직전에 영화는 전혀 엉뚱한 화면, 어두움과 긴장과 폭력이 항상 따르는 장면을 보여준다. 많은 쇼트에서 카메라가 잡은 프레임은 종종 힘을 잃고, 그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막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서 ‘살인사건’이라는 이름이 암시하는 미스터리는 사실 이야기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이야기가 진행되는 형식에 대한 미스터리다.

너무나 겹겹이 층을 이룬 이 영화에 대해, 너무나 많은 방식으로 해석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이러한 점은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는 단적인 이유일 것이다). 혹은 영화의 시작 부분과 영화의 끝부분이 이루는 어떤 대칭적 일치는 하나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시 그중 하나의 예를 든다면, 첫 부분에 샤오쓰가 영화 촬영장에서 위로 올라가 현장을 훔쳐보는 쇼트가 있다. 이 구도는 아마도, 이 영화가 샤오쓰와 샤오밍과 가족과 그들의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과 일치할 것이다. 영화 촬영장에서 지리하게 진행되던 촬영은 결국 끝나지 않고, 폐허가 된 채로 중단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을 확인한 직후 샤오쓰는 훔쳐간 손전등을 촬영장에 돌려주고 떠난다. 그리고 살인사건. 카메라는 마치 샤오쓰가 촬영장을 훔쳐보듯 그 현장을 훔쳐본다. 이제 샤오쓰의 세계는 중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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