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ウトレイジ 最終章

C20
アウトレイジ 最終章
한글제목 아웃레이지 최종장
Outragefinal.jpg
단편 아니오
감독 기타노 다케시
배우 비트 다케시, 피에르 타키
국가 일본
연도 2017
태그 야쿠자,폭력,의리

단평

날짜 2017-10-15
평점 3 / 5


기타노 타케시의 첫 번째 아웃레이지 영화가 나왔을 때, 그의 영화는 무언가 새로운 변주를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늘 논리적인 방식으로 기승전결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회피했던 그가, 아웃레이지에서는 거의 수학적인 구조에 가깝게 등장 인물들의 몰락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두번째 작품인 아웃레이지 비욘드 에서도 그 시도는 변하지 않았었다. 아웃레이지 속의 세상은, 포스터에서 강조하듯 "전부악인"인 세계다. 어찌보면 그의 첫 작품인 그 남자, 흉폭하다 의 세계를 좀 더 순도높게 증류한 식이라도 해도 무방할 것이다. 첫 두 편의 아웃레이지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서로 눈을 굴리듯 악의를 주고받다가, 마지막 순간 더이상 버티지 못하는 약자가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이야기. 그래서 아웃레이지 비욘드 에서, 마지막 장면은 그 세계의 일종의 글리치 같은 요소였다. 약자가 철저히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세계의 거의 유일한 모순. 사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나는 그랬다면, 비록 많은 평론가들이 혹평하고 있지만 2000년 이후 가장 성공한 기타노 타케시의 영화(들)라고 옹호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3편이 파이널 혹은 最終章 혹은 Coda 란 이름을 달고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한편으로 기대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려스러웠다. 글리치로 영화가 끝났다면, 그 다음에는 그 모순을 이어나가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야 한다. 마치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개된 아웃레이지 파이널 은 기묘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오오토모는 완전히 장회장에게 몸을 위탁해, 제주도에서 호텔과 여자를 관리한다. 여기에 변태 성향의 하나다가 여자에게 난동을 피우고 그들과 시비가 붙었다가 부하 한 명이 죽는 사태가 벌어진다. 문제는 하나다가 (오오토모가 몸담았던 산노회를 박살낸) 하나비시회 소속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비-야쿠자 출신 회장과 부두목 간의 내분을 점점 키우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나비시는 장회장을 이용해 이 싸움을 폭발시키려 한다. 장회장은 "우리는 야쿠자가 아니다"란 논리로 그들과의 직접적 싸움을 피한다. 오오토모는 자신이 하나비시와 경찰과 (도쿄의 하나비시와 다를바 없는) 산노회에 이용당하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의 복수를 행한다. 모든 복수가 끝나고 그는 제주도에 돌아가지 않고 퇴장한다.

결국 여기서 오오토모는 다시금 90년대 비트 타케시의 모습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조직 싸움에서 밀려 오키나와로 유배된 야쿠자 (소나티네), 동료와 아내를 잃어버린 늙은 형사 (하나-비) 같은 캐릭터가, 아웃레이지 파이널 에서 반복된다. 혹은, 오오토모라는 캐릭터가 이 마지막 장에서 비로소 무대의 앞으로 나온다. 흔히 잊고 넘어가는 것은 아웃레이지에서 오오토모가 일종의 "개입하는 화자"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다. 상기한 영화들, 더 나아가 자토이치 에서 비트 타케시는 이야기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역할로써 등장한다. 기존의 질서를 뒤집지는 못하지만 목숨을 걸고 반항하는 인물이다. 아웃레이지에서 그는 그러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혹은 그러할 겨를이 없이, 오오토모는 거대한 야쿠자 세계와 타협한다(어쩌면 반대방향의 관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타협한 결과에 순응한다. 2편의 마지막에서, 그는 비로소 화자의 역할을 벗어던지고, 다시 전면에 나서기를 선언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이미 2000년대 들어 이 선언을 수없이 반복해 왔음을 기억해야 한다. 동명이인을 만들어 우스꽝스럽게 이어붙인 타케시즈 나, 자전적인 듯한 이야기를 맥없이 반복하는 아킬레스와 거북 같은 예는 그의 전형적인 실패담이다. 안타깝게도, 상기했듯, 그는 이번에도 90년대의 자신을 "따라하는" 것에서 멈추고 만다. 그가 화자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의 행동은 전복을 위한 반항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예컨대 오오토모가 예의 총질을 하는 씬에서, 바로 다음 장면은 하나비시의 반응이다. 이로써 그의 "반항"은 영화 속 세계에서 받아들여진다.

이 무기력함이 영화적으로 변호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직전작인 8인의 수상한 신사들 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시대에 뒤쳐져서 버림받는 (과거에 잘나갔던) 노인의 자조적 푸념을 담아낸 이 영화는, (비록 옹호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제 기타노 타케시의 영화적 자아가 영웅으로서 살수 없음을 최초로 인정한 작품이다. 혹은 본작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오오토모에 대한 평가 - "구닥다리 야쿠자" - 역시 그러한 맥락 위에 있다. 그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이용당하다 버려질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그가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이유는 그가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모든 모순 속에서, 그의 "따라하기"는 형식적으로 정당화된다.

영화는 독립된 작품이라기 보다는, 3부작을 마무리짓는 작품의 차원으로써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 하더라도 논쟁할 지점은 여전히 남아있다. 나는 이 영화에 호감을 가지고 있으나, 남에게 추천할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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