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테이블

C20
더 테이블
한글제목 더 테이블
더테이블.jpg
단편 아니오
감독 김병관
배우 한예리, 정은채, 임수정, 정유미
국가 대한민국
연도 2016
태그 연애,만남,지배


단평

날짜 2017-09-03
평점 4.5 / 5


영화는 네 파트로 이루어진 연작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극중에서) 연예인 정유미가 전 남자친구의 무례함을 견뎌내는 이야기, 잡지 에디터인 정은채가 서툰 남자의 구애를 받아주는 이야기, 결혼 브로커인 한예리가 진짜로 결혼을 하려는 이야기, 결혼을 앞둔 임수정이 전 남자친구를 만나 방황을 보이는 이야기. 이 네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남여관계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테이블"은 그 매개체 역할을 한다. 여기서 "매개체"란, 말그대로 미디엄 이상 혹은 이하의 역할을 하지 않는단 뜻이다. 영화의 대부분의 시간은 배우의 얼굴과 신체를 감각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롱테이크는 그리 많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최대한 쇼트를 나눈다. 카페 창가에 놓인 테이블은 각 파트의 시작과 끝 부분에서, 부감 또는 클로즈업으로 나타난다. 우스운 말이지만 인물들은 테이블을 언급하지 않는다. 임수정의 파트에서, 상대 남자가 테이블 위에 놓인 꽃잎을 떼어 헤집고 있을 때, 임수정이 그러지 말라고 다그치는 장면 정도가 있다(그나마 그들의 언급도 테이블 자체를 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테이블이라는 개념을 마주했을 때에 갖는 통속적인 기대, 즉 (예컨대 광장이나 공원처럼) 사람들이 나와서 대화하거나 외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장소, 라는 정도의 간략한 역할마저도 영화는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네 단편을 엮어내기 위한 어떤 명시적인 오브제일 뿐이다. 영화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오롯이 시나리오와 촬영, 배우의 연기일 뿐이다.

확실히 촬영과 연기는 훌륭하고, 영화의 의도를 왜곡되는 일 없이 잘 재현해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설적으로 이 영화 자체에 대해 더 또렷이 이야기할 수 있다. 테이블(혹은 광장 혹은 공원)이 암시하는 또 하나의 의미는, 그 앞에 마주하고 서거나 앉은 사람들이 의도에 관계없이 평등한 관계에 있을 것이란 기대다(물론 실제로 테이블에 앉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만난다. 그러나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그들이 최소한 테이블 앞에서는 동등한 위치에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을 전제한다). 영화에서, 테이블의 역할은 정반대다. 테이블은 그들의 불평등함을 감춤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혹은 테이블은 그들의 의도를 왜곡시킴으로써 선의와 부도덕성 사이의 경계를 흐린다. 정유미의 파트에서 테이블은 그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에 앉아있게 하는 상징적인 역할을 한다. 정은채는 테이블 위에서의 손잡음으로 인해 간신히 설득당한다. 한예리의 대화는, 아무리 좋게 봐주어도 결국 거짓말과 사기의 연장선을 작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임수정은 유일하게, 상대방에 대해 허식을 벗고 동등한 위치에 서도록 호소하고 있다(그러나 거친 가설로는,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임수정이란 배우 자신의 힘 때문일 것이다).

결국 더 테이블의 평가 중 많은 부분은 최악의 하루의 것을 공유한다. 차이점이라면, 하나의 완결된 기승전결을 추구했던 최악의 하루에 비해 영화는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끌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김병관의 방법론 하에서, 빚어낼 수 있는 수준은 이정도 까지가 한계일 지도 모른다. 혹은 현재의 우리들은 이 이야기를 길게 끌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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