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의 탄핵 대한민국의 정치는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민주주의가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모두 마주하고, 그 사례들에 대한 대응을 착실히 메뉴얼로 정리해 오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국가 중 전쟁, 독재, 계엄, 직접선거, 간접선거, 민중항쟁, 시민혁명, 개헌, 쿠데타, 탄핵 등 민주주의가 의도한 또는 의도하지 않은 주요 오작동을 경험하고 해결한 국가는 없다. [[wiki/constitution_ko|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은 이러한 사례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최대한 막기 위한 촘촘한 장치로 이루어져 있다. 그 결과 한국의 정치체계는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시민 개개인의 목소리를 민의로서 가장 귀기울여 듣도록 설계되어있다(그러나 듣는것과 이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은 두 가지 한계를 갖는데, 첫째로 가장 완벽한 작동이 아닌 오작동의 방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각계의 끊임없는 불평과 개혁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으며, 둘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계 자체에 손을 대려면 - 노골적으로 말해 개헌을 시도하려면 - 또 다른 오작동이 발생해야 진지한 총의를 모으기 위한 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 그런데 후자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정확히는 후자를 시도하겠노라고 사회 전체에 선포한 뒤 총의를 모으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오작동이 발생해야 하는 걸까? 혹은 개헌의 과정에서 정치체계를 바꿈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란을 사회는 어느 정도까지 참아줄 수 있는 것일까? 대한민국에서 시민의 의지와 요구로 개헌이 이루어진 것은 1987년이 사실상 유일함을 잊으면 안된다. 심지어 2016년 촛불 정국과 박근혜의 탄핵에 이은 문재인 정부의 등장에도, 그들이 시도한 개헌은 국민적인 동의를 얻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 턱을 넘지도 못했다[^1]. 2016년에도, 2024년에도 위기에 몰린 민정당-계열 세력은 ‘임기단축 개헌‘이란 카드를 들고 오지만 번번이 비웃음의 대상이 될 뿐이다. 바꿔말하면 대통력이 탄핵에 몰리는 체제상 가장 중대한 사건에도 개헌이란 주제가 비웃음의 소재가 될 정도로 개헌은 대한민국 사회에 있어 정말 최후의 최후의 수단이다. 다만 그 사태에 이르지 않도록 메뉴얼 작업을 계속해왔을 뿐이다. 2024년의 비상계엄 사태는 6공화국 들어서 우리 국민이 마주한 최악의 사례다. 성공의 여부를 떠나서 이보다 더 최악인 상황이 존재할 수 있을까? 아마 쉽게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두 가지인데: 첫째로 윤석열의 무능력함으로 인해 쿠데타가 실패한 것이고(이 부분에 대해서는 [[esay/moon_and_yoon|다른 글]]에서 더 깊게 다룰 것이다) 둘째로 쿠데타를 계획한 측의 레퍼런스 - 45년 전의 비상계엄 - 를 나머지 국민들도 모두 알고 있는, 이른바 대칭적인 게임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대한민국 국민은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다행스럼게도, 쿠데타를 막아낼 수 있었다. 이미 경험해 봤기에 메뉴얼로 정리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이 내란수괴 - 아직 대통령직을 붙들고 있는 이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처리할 것인가, 에 대해서는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은 길이었다. 2016년을 겪은 대부분의 국민으로서는 전례가 있는 처리 방법, 즉 탄핵이 가장 적합한 답변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6공화국 헌법 하에서 너무나 강한 권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의 권한을 즉각적으로 빼앗는 방법이 탄핵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여당측에서는, 즉 쿠데타를 옹호하는 측에서는, 또 다른 레퍼런스 - 즉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란 슬로건을 내세운다. 요컨대 실패한 쿠데타의 경우에도, 그들을 즉시 끌어내리기보다는 ‘질서있는 퇴진’을 시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들의 논리는 절대다수의 국민에게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무엇보다 윤석열이 쿠데타 이후 직을 유지하는 동안의 사회적 혼란이 즉각적으로 체감되었기 때문이다[^2]. 그러므로 저들이 지속적으로 시도하고자 했던 탄핵 지연 전략은 두번만에 실패에 돌아갔다. 그나마도 간신히 정족수를 채워서 가능했으며, 국민의힘은 자신의 최소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배신자’ 12명(혹은 그 이상)을 울며 겨자먹기로 끌어안고 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들의 행위는 명백히 반헌법적이며 사회는 그들을 단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87년 헌법의 목적 - 반헌법적 세력의 위협을 제거하고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 이 달성된 다음에야 우리는 개헌에 대해 다시금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3]. [^1]: 물론 이 개헌안 표결 역시 특정 정당의 의도적 불출석으로 인한 정족수 미달로 인해 폐기되었다. 이는 2024년에 이르러 그들이 돌이켜봐야 할 또 다른 교훈적 사례다. 2017년 당시 개헌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에게 지금처럼 ‘헌법기관의 의무를 다해라‘라고 요구하는 목소리는 없거나 거세지 않았다. 왜 그때와 지금은 다른가? 왜 지금 그들은 겁에 질려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이상 그들이 다수당의 지위를 되찾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2]: 물론 이는 상당 부분 정부와 여당의 무능에 기인한다. 우리는 이제 다가올 5년동안 ’저들은 극우이며 극우는 무능하다‘라는 프로파간다를 지속적으로 외쳐야 한다. 계몽에는 지루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해서는 안된다. 저들은 무능하다. [^3]: 87년 헌법 전문.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