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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텍스트
기록일2024/10/14
별점★★★☆☆

기사단장 죽이기

의 표지에는 ‘하루키 소설의 결정판‘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책을 읽으면 실로 그렇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현실과 환상 간의 경계에 서 있는 인물들, 성장과 고뇌에 관한 주제, 섹스로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형성되(어야 하)는 인간관계,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한 역사적 막락의 무리한 삽입, 자동차/클래식 취향의 집착 등.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은 화가고, 초상화를 주로 그린다. 그는 얼마 전 5년동안 결혼생활을 이어온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고 일본 전역을 자동차 한 대로 돌며 방황한다. 그리고 초상화를 다시 그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그는 친구의 아버지, 역시 화가이며 지금은 혼수상태로 요양소에 있는 이의 빈 집에 들어가 살기로 한다. 그는 동네 미술교실에서 강사 일을 하며 수강생(유부녀)과 섹스하는 것으로 일상을 소일한다. 어느 날 그의 이웃이 찾아와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한다. 그는 호기심이 일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초상화를 그리며 이웃에 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은퇴했으며 (자신의 아이라고 믿고 있는) 어떤 여자의 자식을 쫓아 이 동네에 이사왔다. 그리고 그 아이의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요청한다. 한편 주인공이 머물던 집에서 그는 ‘기사단장 죽이기’란 그림을 발견한다. 그 후 그의 집 밖 구덩이에서 정체모를 방울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방울을 꺼내자 ‘기사단장’의 형태를 한 ‘이데아’가 그와 주변인에게 출몰한다.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고, 이데아는 자신을 ‘죽여’ 메타포 속으로 들어가야 아이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알 수 없는 신비한 과정을 거쳐 며칠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도 집에 돌아온다. 아내도 그에게 연락해 재결합을 바란다. 그는 그 집을 떠나고, 얼마 뒤에 딥은 불에 타 무너진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책이 높은 흡입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소재의 참신함으로 인해 독서를 멈추지 않도록 한다는 점이다. 장편소설로서 이 점은 분명한 장점 중 하나다. 그러나 또 하나 부정할수 없는 사실은, 그렇게 우리를 끌어당긴 책을 우리가 못 이기는 척 통과해 나갔을 때 단순한 유흥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책에서 다루는 역사적 사건 - 나치, 오스트리아, 난징 - 이 갖는 맥락의 깊이란 다빈치 코드에서 늘어놓는 역사적 배경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사건으로 대체해도, 혹은 완전히 들어내도 소설을 전개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는 뜻이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책에서 다루는 핵심적인 개념인 ‘이데아’와 ‘메타포’는, 그 존재가 가리키(어야 하)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호명할 수 없기 때문에 작가가 애둘러 부르는 이름에 다름아니다. 다른 모든 소품들, 자동차나 음반 등은 뭉뚱그리지 않고 ‘재규어‘니 ’솔티’니 하며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접근자세다. 혹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어떤 소재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소품화한다는 점에서 양자는 동일한 접근방식을 갖고 있다. 말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에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좋으나, 그럼에도 말하기로 결정했다면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이 취하는 자세는 이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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