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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영화
기록일2021/08/06
별점★★★★★

8월의 크리스마스

8월의 크리스마스는 굉장히 이상한 영화다. 영화는 굉장히 뻔한, 신파극의 설정에서 시작한다. 젊은 남녀가 있고, 그 중 남자는 시한부 인생이고,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둘은 서로 마음을 두게 되고,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향해 혹은 예정된 파국으로 향하는 이야기. 초반까지 영화는 그 전형을 따라간다. 한석규가 연기한 정원은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고, 심은하가 연기한 다림은 구청 직원이다. 다림은 주차 단속을 위해 사진을 자주 맡기는 과정에서 정원에게 마음을 연다. 그러나 정원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상태이다. 영화는 그가 친구와 가진 술자리 씬을 통해 관객에게 이를 슬쩍 내비친다. 이 순간 영화와 관객은 공범이 된다. 일반적인 신파극에서, 영화는 두 인물 중 한쪽만이 아는 사실을 관객에게 공유함으로써 공범을 만들고, 다른 한쪽이 이를 알게 될 때까지 관음과 카타르시스의 쾌락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그리고 결국 둘 모두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 때부터 영화는 방관자의 위치에 관객을 놓는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절대 손해보지 않는 장사를 하게 된다. 혹은, 영화가 그 비밀을 어느 시점에 폭로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결국 뻔한 설정과 이야기에서 영화의 성패, 즉 관객의 만족감을 좌우하는 소재다.

그러나 8월의 크리스마스는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정원은 다림에게 항상 웃는 낯을 보인다. 둘은 약속을 잡고 동물원 데이트를 한다. 그리고 그 직후 정원은 다림의 앞에서 사라진다. 이상한 것은, 다림이 그 후 정원을 그리워하기는 하지만, 결국 더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매일 사진관 앞을 배회하고 편지를 써서 문에 끼어 놓고(다만 다시 이를 수거하려다 실패하지만) 혼자서 그를 생각하며 눈물짓지만, 이상하게 그 이상으로 정원의 행방을 찾으려 하지는 않는다. 구청 직원이고, 주변 지인들에게 수소문한다면 충분히 정원을 찾을 수 있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대신 화를 참지 못하고 사진관 유리벽에 돌을 던져 깨뜨린다. 이것이 다림이 사라진 정원에게 보내는 가장 큰 의사표현이다. 그 이후 다림은 갑자기 침묵한다. 혹은 퇴장한 다림이 다시 등장하는 시점은, 정원이 (예정되었듯) 사라진 뒤에 성숙한 모습으로 사진관에 들리는 씬에서이다. 한편 정원은 갑자기 사진관에서 자취를 감춘 뒤, 다시는 다림과의 세계에 등장하지 못한다. '못한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가 다림을 만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다림이 일하는 구청에 찾아가지만, 그 순간 다림은 그곳에 없다, 그러나 정원은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혹은 구청 직원에게 부탁하면 결국 다림에게 연락이 닿을 수 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는 예정된 퇴장을 망치지 않으려는 정원의 의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영화는 정원이 다림을 만나고자 하는 일말의 망설임을 가로막는다. 이어지는 쇼트에서 정원은 구청 1층에 앉아, 창 밖에서 일하러 떠나는 다림을 발견한다. 다림이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을 하러 '떠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가 다림을 만나려면 창문과 복도와 구청 대문을 거쳐서 주차장에 있는 주차단속 차량으로 달려가야 한다.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신파극의 공범이라는 착각에 의기양양하던 관객은, 한밤중에 다림이 문닫힌 사진관 앞에서 정원을 기다리다가 프레임에서 한동안 사라진 뒤, 갑자기 다시 나타나 돌을 던지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다. 유리벽이 깨진 직후 이어지는 쇼트에서 다림은 정확히 카메라를 마주하고 있다. 혹은 관객은 그 순간 자신들을 응시하는 다림을 마주하게 된다. 이제 이 쇼트가 끝나고, 다림이 사라지면,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림이 알고 있는 혹은 앞으로 하게 될 무언가를 알려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혹은 영화는 정원이 굳이 구청에 찾아가 다림을 방해하려는 것을 막아낸다. 이제 이 신파극의 공범은 우리가 아닌, 정원과 다림이 된다. 우리는 결국,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림이 다시 등장했을 때 지금까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왜 다림이 변했는지를 영영 알지 못할 것이다.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영화의 훌륭한 점은, 신파극에서 시작했지만 그 신파로부터, 예정된 파국으로부터 주인공들을 구원하고, 그 자리에 대신 관객을 제물로 앉혀놓았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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