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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 Approved |
cinem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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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Roter Himmel |
역제 | 어파이어 |
개봉연도 | 2023 |
포스터 | |
감독 | christian_petzold |
배우 | paula_beer, thomas_schubert |
국가 | 독일 |
장르 | 드라마 |
영화는 소포모어 증후군을 극복하기 위한 남자의 불안함과 고뇌를 다룬다. 친구와 함께 친구(의 어머니)의 별장으로 일을 하러 온 남자는 두번째 작품에 대한 스트레스로 많은 고뇌 속에 방황한다. 친구 역시 예술학교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지만, 여유롭고 느긋하게 사람들을 사귀어가며 세계 속에서 생활한다. 남자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자기의 세계 속에 갖혀간다.
영화에서 남자의 세계를 위협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상술했듯 두 번째 작품의 성공을 이루어야 하는 남자 내부의 불안감. 이 불안감은 출판사 사장의 방문 계획으로 가시화된다. 다른 하나는 전국을 휩싸고 있는 산불. 대화와 사이렌을 통해 풍문처럼 들려오던 산불은 결국 그들의 가까이에 다가온다. 영화는 첫 번째 씬에서 남자와 친구의 차를 고장내어 둘을 별장에 고립시키고, 남자를 도망가게 하지 못하게 붙잡는다. 일종의 고문과 관음의 순간. 영화는 남자가 이 상황에 몰리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예상하고 서서히 그를 조여간다. 그러나 남자의 결말이 오롯이 영화가 잘 짜놓은 덫에 걸려들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영화는 그 윤리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혹은 회피하기 위해) 그가 언제라도 마음먹으면 자신을 둘러싼 압박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영화는 남자가 파멸에 이르는 꼴을 볼 생각이 전혀 없다. 왜냐면 영화 속 세계는 남자를 위해 마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먼저 거기에 머물고 있던 나디아는 영화가 마련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영화에서 남자는 끊임없이 나디아를 ‘발견한다’. 혹은 나디아가 등장하는 많은 쇼트는 남자의 시선이 나디아를 향하고 있음을 명시한다. 그러나 남자는 나디아를 ‘바라보기만 한다’. 이는 영화에서 카메라가 하는 역할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즉 어떤 준비된 이미지를 찍어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 그가 나디아에 대해 알아내는 사실은 관객이 이미지를 보고 알아낼 수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디아가 출판사 사장과 대화하기 전까지 그는 나디아가 대학원생이며 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오직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지레짐작한 편견만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이는 관객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아는 것은 우리도 안다. 그가 모르는 것은 우리도 모른다. 그는 영화 속 세계에 걸어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관객에 더 가까운 위치, 세계의 바깥에서 영화를 관찰하려는 생각만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그의 세계는 영화 속 세계와 함께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영화가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주변의 모든 등장인물이 세계의 붕괴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영화는 산불로 인해, 혹은 시간에 의해 죽어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남자에게 보여준다. 이 시퀀스는 결국, 남자에게 ‘당신의 세계가 붕괴하더라도 우리의 세상은 붕괴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메세지를 던진다. 에필로그 부분에서 등장하는 한 장의 사진은 세계가 무너지지 않을 것임을 한 번 더 역설한다. 이 순간 남자의 시선은 지금까지와는 반대 방향으로, 관객을 영화 속 세계 안으로 끌어들여 설득을 시도한다. 우리는 붕괴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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