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_WK10

2021_03_12_01

결국, 블로그를 다시 시작했다. 몇번이나 블로그를 닫고 열고 하면서 새롭게 다시 시작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나의 (공개할 결심이 선) 사적인 기록을 담을 만한 독립적인 공간이 필요했다. 이미 위키와 트위터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둘은 성격이 약간 다르다. 위키는 내가 습득한 지식과 정보를 주관적이고 사적인 기준으로 수집하기 위한 플랫폼이고, 트위터는 즉각적인 감상을 적기 위한 목적이나, 도리어 이 블로그 같은 매체의 요약과 링크를 다루는 데에 적합한 미디어다. 블로그는 블로그만의 역할이 있다. 물론 블로그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혹은 블로그를 어떻게 정의하여 그 공간에 맞는 글을 쓸 것인가란 결정은 사용자마다 다르다. 나도 여러 블로그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꾸려보았었다. 이번에는, 여기에서는 사적인 생각의 순간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적어나갈 것이다. 둘째, 시대에 역행하는, 긴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과 훈련의 플랫폼으로서의 블로그가 절실히 필요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더 이상 긴 글을 쓰게 될 요인이 사라져가던 차에, 어느 날 통근버스 안에서 ‘이대로라면 나는 긴 글을 쓰지 않은 채 사라져갈 것이다’라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글을 잘 쓰든, 글을 못 쓰든, 주기적으로 긴 글을 쓰는 연습을 멈추지 않아야 나를 잃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나라는 존재의 총체적인 반영이 글이며, SNS 시대의 짧은 글은 나의 표층에 존재하는 우스운 감정만을 발산하게 될 확률이 높다. 요컨대 글을 길게 써야, 글과 나의 상호 피드백이 반복되면서 둘 모두 다듬어지고 변화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능한 매일, 아마도 출근 버스 안에서, 이 블로그를 쓰기로 했다. 이번 블로그에서의 목표는 최대한 길게 글을 써보는 것이다. 물론 긴 글과 중얼거림은 다르다. 최대한 나의 생각을 길게 끌어볼 것. 그러나 길을 잃지는 말 것.

2021_03_12_02

오랫만에 일찍 시간을 내어, 을지로를 가로질러 종로에서 영화를 보았다. 을지로를 처음 드나든 것이 벌써 20년이 넘어가는데, 지난 몇 년동안 을지로는 정말 많이 변해가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흔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다른 동네와 달리 동네가 붐비고, 임대료를 올리고, 기존의 힙한 가게들이 다 빠져나가고, 그대로 땅값만 올라간 채 껍데기만 남는 – 이전까지의 젠트리피케이션 공식이 적용되기에 을지로는 너무 낡고 오래되었으며 너무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제는 시들어가는 산업에 가까운, 그러나 수요가 절대 사라지지는 않을 인쇄나 전기, 간판 등의 업소들이 버티고 있다보니, 을지로가 거대한 자본에 휩쓸릴 여지는 많이 사라졌다. 게다가 위치가 위치다보니 기존의 가게를 뺏느니 아예 더 목 좋은 곳에 새로 건물을 짓는 편이 더 낫다(실제로 을지로 메인 사이트는 수많은 새 건물이 들어선지 오래다). 그래서 을지로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오히려 그 ‘젊고 힙한’ 가게들이 기존 건물주와 가게를 착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아마도, 최근 을지로 거리를 걸으며 조금만 자신을 제삼자의 위치에 놓고 주변을 돌아본다면 ‘착취’란 용어가 과장된 게 아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사적이나 관성적으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 그 사이에 군데군데 박힌 맥락없고 부자연스러운 힙스터 가게들(그나마 요새는 힙스럽지 않은 키치적인 가게가 더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 골목 사이사이를 마치 유령처럼 무기력하게 돌아다니는 젊은 객들. 쇠퇴하고 있되 그 맥락은 남아있던 허약한 동네에, 키치를 넘어 어떤 오브제화된 풍경들이 들어서고 있다. 한국에서, 서양의 산업적 이미지를 표방한 공간적 키치는 이제 시간의 힘으로 어떠한 맥락을 형성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힙함 또는 뉴트로 또는 시티팝 등등 어쨌든 최근에 등장하는 ‘과거의 모방’ 형태의 키치는, 그 시간을 단절하여 현재로 그 이미지를 강제로 끌어온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맥락을 형성하지 못할 수 있다. 같은 시간축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감히 예상하기로는, 현재의 키치가 어떠한 시간적 단절을 겪어 폐허가 된 후에야, 그들이 어떠한 맥락을 형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2021_03_13

수호지를 읽기 시작했다. 전체 120화 중 1화만 읽었으니, 갈 길이 멀다. 그래도 1화의 환상설화에 가까운 이야기들은 마음을 끌었다. 읽으며 흡사 뮤지컬의 형식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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