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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텍스트
기록일2025/09/02
별점★★★★☆

파르마코-AI

책은 당시 나온 최신 LLM 중 하나인 GPT2을 사용해 질문과 답을 얻고, 그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펴낸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질문을 GPT에게 던진다. 기술적으로 다시 말하면 ‘시드’ 값을 입력한다. GPT는 이 입력값으로부터 출발해 문장을 내놓고, 저자가 이에 반응해 적는 질문을 추가적인 시드로 삼아 텍스트를 주고 받는다. 책이 나온지 2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처음 출간된 시점에서 텍스트를 ‘훑어봤을 때’의 놀라움과 경외감이 다소 희석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신기술에 대한 우리의 역치가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초반에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독자는 글을 읽어가면서 AI가 생성한 텍스트에서 어떤 위화감이 존재한다는 실마리를 발견하고 구체화를 시도한다. 아마도 GPT의 패턴에 익숙한 독자들은 더 빠르게 이 과정을 수행할 것이다. 이 텍스트, 그러니까 인간이 프롬프트를 입력하고 AI가 이에 대응해 생성한 문장을 편집한 글들에 대해 우리가 어떤 진지한 토론을 할 가치가 있을까? 분명히 텍스트의 주제는 인간이 설정하거나 AI와의 주고받는 과정에서 스스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안의 세부적인 내용이나 꾸밈새는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만들어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놀라워하거나 감탄하는, 심지어 ’숭고함’을 느끼는 부분은 형식적인 영역에서일까, 아니면 의미적인 영역에서일까? 최소한 이 책이 쓰여졌을 때 대중이 LLM에서 발견한 것은 전자의 비중이 더 컸다. 인간의 (문자) 언어가 갖는 구조를 그럴싸하게 모사할 수 있다는 점. 이 책은 그러한 배경 위에서 후자의 가능성을 환기시킨다. 그러므로 지금의 우리가 이 책을 읽을 때 찾게 되는 것은 그 의도와 정반대의 관점이다: 불완전한 LLM 모델을 통해 더 인간에 가까운 텍스트를 만들어내기 위해, 인간 저자는 어떠한 가공과 조작을 로우 텍스트에 가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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