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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작품이 보여주는 미덕은, 등장하는 인물들의 캐릭터를 고정해 놓고 별다른 변주를 보이지 않는 대신(꽤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전복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곤 한다) 인물들이 마주치는 순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야기를 풍요롭게 만들고, 그 마주침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공을 들인다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그의 또 다른 작품인 애마도, 전부 읽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이야기를 다룬다). 예를 들어 이 책을 읽고 나면, 무심결에 책의 내용을 ’다아시의 성격을 오해한 엘리자베스가 그를 미워하다가 진실을 깨닫고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로 요약하게 될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 요약은 잘못된 것이다. 다아시가 고백하듯 엘리자베스가 다아시를 오만한 인물이라고 판단한 결정은 오해가 아니라 주어진 정보 한에서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그러기에 후반부, 두 인물이 진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질책과 반성을 주고받지 않는다. 혹은, 여기서 소설의 역할은 두 어긋난 남녀가 자신의 성정을 바꿀 생각이 없을 때, 둘을 어떻게 다시 이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내면서도, 이 시도를 독자가 의식하지 않도록 은밀히 수행해내는가에 있다. 이 소설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수많은 인물들이 엘리자베스의 가족을 마주하며 관계를 맺고 대화하는 과정은 기술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메인 스토리라인 -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결합의 성공 - 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교란 역할을 한다. 그나마 가장 노골적인 장면인 캐서린 영부인과의 대화마저도, 소설은 그 장면이 어색하지 않도록 그 필연성을 설득하기 위해 콜린스를 사용했다. 이러한 유기적인 결합은, 후대의 수많은 로맨스 코미디 작품들이 소설의 그늘 아래 있도록 하는 요인일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실패한) 작품이 간과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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