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의 지름길
영화는 오레곤 사막을 헤매이는 세 가족이, 그들이 고용한 길잡이의 설득으로 지름길에 들어선 뒤 길을 잃은 시점에서 (물리적으로) 시작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깊은 강을 건너는 가족들의 쇼트는 그들이 흐르는 담수를 보는 마지막 순간이다. 그들은 몇일이고 물과 식량을 아껴가며 벌판을 방황하지만 아무도 길을 찾지 못한다. 요컨대 그들을 괴롭히는 것은 전부 그들 내부에서 생겨났거나 자연에 의한 것이다(유일한 외적인 인디언의 경우도 그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진짜 그들을 공격하려 했는지 모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의 대사는 자막으로 번역되지 않으며, 가족 일행의 쇼트 사이사이 삽입되는 그의 반응은 양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표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된 내부적 갈등은 길잡이 믹을 신뢰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그들이 포로로 붙잡은 인디언을 (백인들이 노예를 다루었듯이) 다스려서 올바른 길로 인도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는 논리가 이방인에 대한 공포와 충돌하면서 이루어진다. 혹은, 그 논리가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은 역시 가족들 입장에서는 외부인에 가까운 믹이 단지 ‘백인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족들과의 어떤 선을 넘으려 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믹이 부인들과 대화하는 씬에서 이미 영화의 결말 - 정치적 투쟁과 승리 - 은 예정되어 있었다. 혹은 이 씬은 가족 중 성인 남성 구성원이 등장하지 않는, 믹과 여성과 아이들만이 관객들과 공유하는 비밀스런 순간이다. 인디언의 등장은 이 뻔한, 그러나 필연적인 서사에서 어떻게든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영화의 고민의 결과다. 점점 사라져가는 물이 그들의 정치적 긴장감과 갈등을 고조시킨다면, 그들이 개척지까지 공들여 옮기는, 그러나 점점 낡아 삐걱대다 마침내 부서지는 왜건은 그들에게 이 긴장감이 폭발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그러나 인디언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만약 영화 초반에 모의했듯 끝내 믹을 죽였다면, 왜건이 멈추던 말던 영화는 편안하게 결말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목표와 가족의 목표는 상충되어서는 안된다. 얼핏 인디언의 등장이 이를 위한 영화의 의도라면, 인디언을 지지한 가족(혹은 에밀리)은 이를 위한 그들의 정치적 의도로 읽힌다. 그러나 그들이 인디언을 선택한 것은 적합했는가? 영화는 확답을 내리지 않는다. 왜건이 굴러떨어질때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인디언의 수직적 구도는, 시종일관 말에서 내리지 않는 믹의 권력적인 설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 순간, 믹과 인디언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누군가 총을 빼들었다면, 왜건은 멈춰버린 채로 영화가 끝났을 것이다. 그들은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 대신, 마지막 쇼트에서 나무 사이로 인디언이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듯, 자신들의 정치적 투쟁이 희망을 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기를 희망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