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20::Dossier

정성일

From C20::Dossier
This is the latest revision of this page; it has no approved revision.
정성일
한글명
사진 정성일.jpg
직업 영화평론가, 영화감독
국가 대한민국
출생 1959-07-04
사망


사실상,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정성일은 내가 (진지하게) 영화에 들어가게 해 준 인물이다. 나는 그를 진중권의 팟캐스트에서 처음 만났다. 진중권 특유의 얕음이 거슬리긴 했지만, 정성일은 특유의 어법과 깊이를 통해 나에게 영화에 대한 의지를 불어넣어 주었다[1]. 그가 추천해 준 많은 영화들은 아직 다 보지 못했지만, 그가 그 영화를 고름에 있어서 정말로 치열한 자세에 임했을 것이라는 것은 능히 예측할 수 있다.

그의 치열함에 대해 가장 간결하게 정리한 자료는 그가 2001년 부산대학교에서 가진 인터뷰일 것이다[2]. 그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혹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이를 위해 맞서 싸우는 사람이다. 사실상 그를 향한 찬사나 평가, 비판 모두 이러한 프레임 안에서 벌어진다. 예컨대 그를 비판하는 주된 논지 중 하나는 그의 최근 활동이 글보다는 영화관 GV에서 거의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으며, 임권택에 대한 연재글[3] 외에는 활자로 그의 평론을 마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진정 영화를 통해 어떠한 의식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면, 최소한 (그 내용이 아니라) 태도로서의 치열함을 대중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이 옳을 것이고, 그 수단은 활자가 되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는 현재 수준이 적당하다고 믿는 것일까?

또 한가지의 비판점은, 그가 영화에 대해 너무나 치열한 나머지, 그 치열함 자체가 어떤 하나의 권위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대한 지식의 소개 중 적지 않은 부분에 오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진위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거나, 그저 믿는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소와 트뤼포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영화광의 3단계이다. 또 한 가지 개인적으로 의심하는 것은 그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오래 전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가 한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4] 사용한 말이라고 한다. 으레 그렇듯 구체적인 출처는 찾을 수 없다. 최소한 한국인 중에서 이 말의 출처를 찾아본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구글에서 한국어로 검색해 보면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프랑스어에 일천하니 직접 찾아볼 엄두를 내지도 못한다. 답답할 따름이다.

  1. 그 전에도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영화에 대해 생각해 줄 계기를 준 것은 그 때의 경험이 처음이었다. 다만 그가 정말로 대단하다는 것 또는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행위가 대단함을 느끼게 된 것은 좀 더 이후 시점이다. 2020년 현재에 있어서 나는, 영화를 내 삶의 여유 시간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되새기고 있다. 상대적으로 내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는 대학원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2. 『효원-부산대교지』 2001.06.(여름.52호): 영화를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연대하라!
  3. 임권택X102
  4. 뉴스타겟, 2016.12.02, 정성일 작가, ”시시한 영화를 보는 것은 시시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