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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System der einzelnen Künste: die Mu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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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s System der einzelnen Künste: die Musik
이름 Das System der einzelnen Künste: die Musik
한글제목 음악 미학
표지 Nocover.jpg
저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출간연도 1835
태그 철학, 미학, 낭만주의


개요

이 책은 한국에서 헤겔의 음악 미학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원래는 헤겔의 강의록을 모아 출판한 미학강의(Vorlesungen über die Ästhetik)의 3권, 개별 예술의 체계(Das System der einzelnen Künste) 중 음악(die Musik)만을 따로 떼어 옮긴 것이다. 독일어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요약

2017-01-30에 작성한 텍스트를 옮김.

서문: 음악에 대하여

저자는 음악을 논하기 전에 다른 예술에 대한 요약을 우선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품에 영혼의 생동 및 자유로운 개성이 얼마나 반영될 수 있는가, 란 기준을 통해 건축물과 조각을 양 극단에 놓습니다[1]. 즉 예술에서 영혼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어떠한 내면적인 가치와, 물성을 통한 외면적인 가치가 어떻게 관계하는가를 통해 예술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낭만주의)회화는 고전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여 내면의 가치가 외면으로 표출되도록 하는 형식입니다. 회화에서 정형화된 외형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색채의 변화로써 외관을 자유롭게 결합하고 분리할 수 있습니다. 음악은 이러한 관점에서 상통합니다. 음악은 실제의 존재를 완전히 없애버림으로써 외관적으로 고정된 존재가 전혀 나타나지 않게 하는 예술이기 때문입니다. 혹은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회화가 공간적 요소를 평면으로 감소시킴으로써 상기한 목표를 달성하였다면, 음악은 이 감소의 과정에서 진동하는 물체가 내는 소리를 재료로 사용합니다. 이 때 음악을 받아들이는 감각은 시각이 아닌 청각이며, 이 청각은 물질적 혹은 공간적인 반응으로 신호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2]. 한편, "내면의 가치"는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음악은 어떤 대상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내면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음악의 효과는 철저히 주관적인 것에서 주관적인 것으로의 이행입니다.

음악에서 요구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주관적인 내면성 같은 것이다; 음악은 직접적으로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정서의 예술이다. 그림을 예로 들어 보자. 그림에는 내면적인 생명과 활동, 마음의 기분과 열정, 영혼의 상태, 갈등, 그리고 운명이 인상과 형상으로서 표현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림을 보면 그것은 객관적인 현상일 뿐이며, 그것을 보는 나는 나 자신의 내면과 분리된 채로 머물게 된다. 사람은 대상, 즉 조각이나 그림의 상황, 성격, 형태 속으로 빠져들며 예술 작품에 감탄한다. 열중하게 되고 만족해 한다. 그러나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예술 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대상물로서 머무를 뿐이다. 우리는 그것을 관조하는 관계에서부터 그 이상 더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음악은 이와 다르다. 음악의 내용은 스스로가 주관적이며, 외면적인 요소는 공간적인 대상물이 아니고 근거없는 자유로운 떠돌음을 통해서 나타난다. 음악은 스스로의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고,단지 내면적인 주관적인 전달만 있을 뿐이며, 오로지 주관적인 내면성의 존재를 위해서만 전달한다. 그래서 음은 표현이며 곧 외관이다. 그러나 그 외관은 즉시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귀로 겨우 포착하려면 그쳐버린다; 이로부터 시작되는 인상은 동시에 내면화된다; 음들은 오로지 깊은 영혼을 울리고, 그 결과 이상적인 주관성을 부각하며, 그 움직임을 가져온다.

음악의 일반적 성격

음악과 조형예술 그리고 시와의 비교

  1. 건축술과의 비교

    건축은 내용에 의해 외관이 결정되지만, 내용이 외관에 내포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이 점은 음악과 유사합니다. 혹은, 음악과 건축은 어떤 규정된 형식(건축 - 물리법칙, 음악 - 화성과 리듬) 아래에서 기술적으로 내용을 표현합니다. 그러나 음악은 음향을 통해 감정적인 요소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건축은 음악처럼 내용과 외면이 상징적 의미로써의 통일성을 취득하지는 못합니다.

  2. 조각과 회화와의 비교

    미술의 경우 음악과 그나마 유사성을 공유하는 것은 회화일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미술은 실재하는 사물이나 외부적 공간을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3]. 따라서 미술은 어떻게든 구상적인 요소를 앞에 내놓아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음악의 모든 요소는 추상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내용이나 소리의 묘사, 노랫말까지도 추상적입니다. 따라서 예술의 본질적인 내면을 향한다는 측면에서 음악은 가장 좋은 예술형식입니다. 구상성이 전제된 예술에서는, 각 객체에서의 개성을 끄집어내는 가운데 인간의 일반적인 면과 이상적인 면 사이의 자연스럽고도 종합적인 조화를 잃지 않으면서 각각의 부분을 표출 해야하는 반면, 음악은 (시간적인 배치 과정에서) 이러한 통일성이 제한적이며 느슨합니다. 따라서 반대로 미술에서의 어떤 부분의 변조가 각 내용에 대한 재현과 분석에 의해 진행되는 것과 달리, 음악은 어떤 테마가 변조되는 규칙은 철저히 그 형식에 의거합니다.

  3. 시와의 비교

    저자는 사실상 시가, 소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음악과 가장 유사하다고 말합니다[4][5]. 두 예술형식의 차이점은 이 음이라는 재료를 어떻게 다루느냐에서 옵니다. 우선, 음악은 음을 어떤 이차적 매개체가 아닌, 그 자체가 전달해야 할 대상으로써 다룹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재료인 "음"과 그 내면의 관계가 역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특히 음악이 그 고유한 요소를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내면적인 것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런 가운데 음악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예술의 한편으로만 치우치고 있어, 소위 음악 작품에 대한 흥미와 숙련이 전문가에게만 속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고, 예술이 보편적인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다.

    시는 결국 언어나 음을 통해 어떤 내면적인 개념과 직관을 외부적인 현상으로 완성시킵니다. 음악은 이러한 표출을 거부합니다. 반복하면 (마치 감정의 발현과 같이) 정서를 주관적인 세계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음악이 그려내는 세계는, 창작자가 아니고서야(혹은 창작자 자신조차도) 직관과 관념에 의해 철저히 독립적입니다. 시는 상기한 (느슨한 형태의) 언어적 지시로 인해 미술의 확실한 조형성과 음악의 영혼의 내면성 의 중간에 위치하며, 따라서 이 언어 너머의 감정을 보충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가장 기묘한 지점은 시와 음악이 결합할 때입니다. 성악곡에서 가사와 음악이 결합할 때, 두 형식은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아니라, 한쪽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다른 한쪽이 희생하는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훌륭한 시를 가사로써 곡을 쓰는 작업은 매우 어려우며 대부분 실패합니다. 음악적으로 잘 짜여진 곡에 붙은 가사들은 많은 경우 시적으로는 허접합니다. 감정적 고양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음악의 경우, 가사는 잘 알려진 혹은 정형적인 몇몇 구절이 반복되고, 음악을 해설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음악에 있어서 내용에 대한 파악

상기하였듯, 음악은 다른 예술형식과 비교해 극도의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따라서 음들을 적절히 배열해 어떤 정서적 느낌을 그려내고, 그 속에 (필요하다면 언어적 요소를 첨가하여) 관념을 포함시키고, 수용자에게 그것들을 주관적으로 발현시켜야 하는 매우 어려운 창작작업을 필요로 합니다. 즉 일차적으로 주관적 내면성 을 확보한 다음, 그 묘사된 내용을 전제로 (거의 모든 종류의) 감정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 "감정의 표현"이라는 측면에서는, 음의 "감정의 표출" 또는 감탄사라는 본질에 대해 떠올려야 합니다. 음악이 이러한 "감탄사로써의 음"과 다른 점은, 물론 음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지만, 당연하게도 음악이 인위적 과정을 통해 음을 배열하는 데에서 옵니다[6].

음악의 효과

따라서 음악은 어떤 이해를 위한 예술은 아니며, 내면적인 감정을 움직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수용자는 음악작품에 대해 집중함으로써야 이 이 감정을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몇 가지 사실을 주지해야 합니다: 첫째, 음악에서 재료(음, 화성, 멜로디 등)는 내용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즉 화성과 멜로디의 움직임은 곧바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표현이자 느낌으로 사용되는 것이며, 듣는 이에게도 같은 것을 일깨우는 것이 가능 합니다. 둘째,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일깨움은 표면적인 것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만일 음악이 어떤 보다 깊은 내용의 표현이나 영혼으로부터 우러나우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단순히 감각적인 음향과 아름다운 소리 외에는 그 이상의 내면적인 움직임을 느끼게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 화성과 멜로디의 진행만을 파악하려는 관찰만이 계속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음악은 그러한 이해적 측면의 분석이 우선으로 되어 예술 작품은 비루투오소적인 기술로만 이루어진 졸작들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셋째, 음악은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갖는 가치 이외에, 그 음악이 울리는 시공간에 의해 그 역할이 정의되는 측면을 동시에 가집니다. 종교적 공간이나 군대에서 울리는 음악은 그 목적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특정한 형식이[7] 이 시점에서 저자의 관점이 철저히 고전주의라는 틀에 놓여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건축술에서는 기본형에 대한 묘사 방법을 통해 상징적인 암시 밖에 나타낼 수 없으나, 조각은 위와 같은 면을 특별히 갖추고 있는 예술이므로 고전적 예술 형식의 요소와 표현 방법을 보여준다.).

음악적 표현 기법을 형성하는 특수한 요소들

당연하게도, 단순히 음이 다른 음으로 변화하는 작용만으로는 음악이 그 내면적 가치를 가지기 어렵습니다. 이를 예술로써 그 내용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그 관계를 정확히 정의해야 합니다: 음은 모호한 잡음이거나 울림이 아니어야 하며, 확정성과 순수성을 갖추고 있을 때에만 음악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음은 이런 확정성을 통하여 다른 음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의 시간적인 지속으로서의 실제 음향으로 직접 존재한다. 물론 자연에서 발생하는 소리들 또한 그들 스스로 어떤 우연한 요인으로 인해 음악적인 결합을 만들어내며, 그것이 실제 음악에 뉘앙스와 영감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결국 유기적인 방식으로써의 음악은 인간의 지성을 통해서 완성될 수밖에 없습니다[8][9]. 결국 "예술적인 관점에서의 음"은 "음이 점유하는 시간"이라는 측면과 "음의 속성이 가진 공간적 관계"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집니다. 그리고 이 움직임과 관계 속에서 내부의 영혼이 드러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리듬 및 박자에서 드러나듯 그 구조의 필연적 확정성과 통일성, 음의 울림[10]으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 - 화성학, 그리고 이러한 음과 화성과 리듬이 관계하면서 일어나는 멜로디로 이를 분류할 수 있습니다.

속도, 박자, 리듬

음악은 어떤 재료의 물성이 오로지 시간적인 움직임을 통해 나타나는 예술입니다. 이것은 음악이 다른 예술과 구분되는 가장 가시적인 차이입니다. 그런데, 시간은 공간에서 그 속성이 음(陰)성적으로 나타나며, 그 자체는 어떠한 변화 없이 균등하고 지속적입니다. 따라서 음악은 이 시간을 자세하게 규정함으로써 그 모호함을 없앱니다. 우리가 시간을 가지고 작업하면서 그런 가운데 생성하고 쇠퇴하며 순간의 사라짐과 새로 시작함은 다름이 아니라, 이 순간과 또 다른 유사한 형태의 순간에 대한 형식적인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오로지 그를 통해서 음직임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 음은 시간 속에서 지속됨으로써 의미를 갖지만, 동시에 다른 음과의 관계를 통해 예술적인 내면을 형상화시킵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의 음은 특정한 시작과 중단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는 (규칙적) 박자를 필연적으로 요구합니다[11].

서로 다른 각 순간들이 하나의 (시간적) 단위로 묶이는 과정을 통해 자아는 스스로 일치성을 만듭니다. 여기에서 자아란 결국 인간으로써의 자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연에서는 이러한 "추상적 동일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박자가 생동감을 얻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규칙적 반복에서 나아가, 리듬이라는 변조를 더해주어야 합니다. 리듬을 형성하는 요소 중 가장 주된 것은 음의 악센트일 것입니다. 이 때, 악센트를 통한 음악의 리듬은 시의 운율과 일맥상통합니다. 물론 시는 음악에 비해 더 엄격한 운율을 요구합니다[12]. 반면 음악은 (저자의 비유에 의하면) 당김음 등을 통해 이러한 규칙성을 최대한 탈피하려 하며, 오히려 너무 규칙적이고 기계적인 음악은 창조성이 떨어집니다[13].

화성

이제 앞에서 논의하지 않았던 근본적인 질문을 언급할 필요가 생깁니다: 음악이 음으로부터 발생한다면, 음을 만드는 주체는 무엇인가? 전통적인 음악에서 이는 인간과 악기의 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각각의 악기가 가진 음고와 음색이 교차하면서 나타나는 관계, 본질적 음가들이 관계함으로써 벌어지는 현상들, 그리고 그 관계가 움직임으로써 보여지는 대비와 화해가 그것입니다.

악기는 결국 어떠한 재료를 가공함으로써 만들어지며, 이러한 가공을 통해 만들어지는 소리를 저자는 크게 선적인 소리(관악기 및 현악기), 평면적인 소리(타악기, 하모니카 등), 인간의 소리(보컬)로 분류합니다. 이러한 특성들은 너무나 이질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대" 예술에서는 단순히 이들을 화합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갑작스런 변화를 통한 극적 효과를 주는 방식으로 더 나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14].

이렇게 형성된 음은 음계를 형성하고, 음계는 조성을 형성합니다. 이 관계는 화성과는 별개입니다. 요컨대 음계나 조성이 포괄적이고 시간적인 규정이라면, 화성은 음이 동시에 울리고 진행하는 규칙에 대한 것이므로 공간적입니다. 저자는 화음을 크게 협화음, 불협이나 조화적인 화음(장7도 등), 불협화음으로 분류합니다. 두번째 분류의 화음은 어떤 예술적 갈등을 표현할 때 쓰며, 불협화음은 그 자체가 모순을 내포하므로, 불협화음은 협화음으로 귀결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15].

멜로디

멜로디는 위에서 언급한 리듬과 화성에 자유로이 움직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완벽한 자유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기반요소에 의해 정의된 큰 차원의 규칙을 따라가면서 멜로디가 비로소 어떠한 음악적 존재가치를 가지며, 멜로디 자체가 그러한 목적을 위한 결합의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멜로디가 그 기저의 음악과 어떤 정도로 결합하는가, 예컨대 최소한의 통일성만을 유지하느냐, 좀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느냐, 혹은 더 극단적으로 음악과 아예 독립적이고 지배적인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각각의 특성과 역할이 달라지게 됩니다.

음악적 표현 방법과 그 내용과의 관계

저자는 음악을 그 표현 방식에 따라 반주음악과 독립적(자립적)인 음악으로 분류합니다. 즉 반주음악은 어떠한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적인 움직임을 포함하는 것이며, 독립적(자립적)인 음악은 음악이 내용과 별개로 화성과 멜로디에 의해 표현되는 것입니다. 저자는 내용을 표현한다는 목적 아래에서는 반주 음악이 더 자유로우며 결합력이 강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되는 점은, 반주 음악에서 음악과 가사의 선후관계가 우리의 생각과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즉 음악은 가사를 보충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사가 음악이 담는 내용의 불명확성을 보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음악에서 내면을 표현하는 방법은 그 이상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 주관적인 느낌을 나타내는 두 종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악은 단순히 어떤 가사를 보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어떠한 사건을 형성하게 됩니다[16]. 그러므로 이 두 표현은 음악을 듣는 동안 동시에 일어나게 되며, 가사를 통해 정해진 내용 안에서 내면의 말들을 주어진 방식으로 행하는 방법 이 반주 음악의 요체가 됩니다.

그런데, 앞에서 한번도 언급하지 않은 음악의 또 다른 특징은 음악이 작곡가의 단계에서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연주자나 성악가의 표현을 거쳐야 비로소 작품으로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17][18].

반주 음악

결국 예술이 어떤 실재하는 무언가를 모방하는 작업이라 할 때, 멜로디는 인간의 분위기 또는 영혼을 음악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방법입니다. 일반적인 성악곡의 경우, 가사 - 시가 어떠한 운율이나 박자, 리듬 등을 계속 변홧켜야 할 필요는 없으므로, 음악 또는 멜로디가 그러한 역할을 대신해 줍니다. 반면 레치타티브와 같이 가사가 음악에 비해 부수적인 형식을 띄는 경우, 가사를 낭독 혹은 낭송하는 과정에서 멜로디의 역할이 대신되며, 음악은 그 불충분함을 보완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유로움을 희생하는 대신에 구조적 복잡함을 필요로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사가 완전히 멜로디에 종속되어 있을 경우, 음악은 가장 자유로운 방식으로 그 예술적 통일성을 시행할 수 있습니다.

자립적 음악

(저자의 정의에 따라) 굳이 나누자면, 음악의 완결성 측면에서 반주 음악은 미술에 더 가까우며 자립적 음악은 조각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음악은 비음악적 요소를 완전히 걷어냄으로써, 완전한 자유와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예술적인 연주

상기하였듯 음악의 주요한 특성 중 하나는 연주자가 참여하여야 그 예술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 연주자는 작곡가와 별개로 독자적인 방식으로 음악에 예술적인 면을 불어넣습니다. 이는 결국 작곡가를 거쳐서 나온 곡의 형식은 철저히 객관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주자의 천재성은 음악에 있어서 어떤 한계를 극복하는 신비로운 경지에 도달하게 해 줍니다.

  1. 이 시점에서 저자의 관점이 철저히 고전주의라는 틀에 놓여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건축술에서는 기본형에 대한 묘사 방법을 통해 상징적인 암시 밖에 나타낼 수 없으나, 조각은 위와 같은 면을 특별히 갖추고 있는 예술이므로 고전적 예술 형식의 요소와 표현 방법을 보여준다.).
  2. 정확히는 "외면의 제거", "음 자체의 제거"라는 두 단계로 걸쳐서 받아들임이 증폭된다고 설명합니다. 귀는 대상을 ... 이상적인 영혼으로 다가오는 내면적인 떨림의 결과를 받아들인다. 이제 진동하는 재료로부터 거부는 심화되어 한편으로는 공간 상태를 제거하게 된다. 이것이 다시 몸체의 반응을 통해서 사라지게 되면서 외면상의 거부는 두 배로 나타나게 된다.
  3. /주/: 20세기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음악이 어떤 (실재 또는 가상의) 공간을 묘사하기 시작하였거나, 그 공간을 의식하고 창작된다는 것입니다. 소위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혹은 음향에 대한 고려가 그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음악에 의해 창조된 공간과 풍경 또한 극도로 추상적이라는 점에서 글의 논조는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글이 1835~1838년에 쓰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4. 저자는 음이 어떤 기호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형이하학적인 재료로 취급된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음을 조합하여 어떤 개념이나 내용을 정의하고 전달할 수 있지만, 발음을 통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그 단어의 의미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회화에서 색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사용하여 어떤 형상이나 표현을 보여주어야 하듯, 발음이나 단어는 조합됨으로써 예술적인 가치를 갖습니다.

  5. /주/: 회화에서 미니멀리즘이나 단색화, 음악에서 앰비언트나 음향에 대한 고민들을 여기에 연결시켜보는 것은 재미있을 것입니다.

  6. /주/: 스티브 라이히의 점진적 과정으로서의 음악 또한 비슷한 관점에서, 미니멀리즘 음악과 주술적이고 반복적인 음악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7. 이 시점에서 저자의 관점이 철저히 고전주의라는 틀에 놓여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건축술에서는 기본형에 대한 묘사 방법을 통해 상징적인 암시 밖에 나타낼 수 없으나, 조각은 위와 같은 면을 특별히 갖추고 있는 예술이므로 고전적 예술 형식의 요소와 표현 방법을 보여준다.).
  8. /주/: 다시, 앰비언스나 사운드스케이프는 이러한 논의를 확장 또는 역전시키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9. 이러한 양적 환원과 (지적 작업을 통해 완성되는) 외관적 특수성은 건축술과 유사한 면을 띕니다.
  10. 예컨대 음가, 음색 - 전자음악의 관점에서 오실레이션의 파형과 주파수, 여러 종류의 모듈레이션 - 등이 이러한 음의 물성을 형성합니다.
  11. /주/: 앰비언트 음악에 대해서 더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12. /주/: 주3 참조.
  13. /주/: 전자음악, 특히 댄스음악은 이러한 주장을 완전히 역전시킵니다.
  14. 저자는 모차르트를 예로 들고 있는데, 19세기 기준으로는 확실히 이 음악들이 현대적인 것에 속할 것입니다.
  15. 그러나 바그너의 트리스탄 코드는 이 규칙을 깨버렸으며, 여기에서 현대음악이 시작합니다.
  16. /주/: 즉 이 표현을 사건 이 아닌 풍경 으로 치환하게 되면, 여러 번 명시했듯 사운드스케이프 에 대한 묘사로 봐도 무방합니다.
  17. 저자는 건축과의 비교를 통해 이 특징을 더욱 부각합니다. 즉 건축도 설계자 이후 기술자의 손을 거쳐야 하지만, 그 기술자에게 어떠한 예술성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습니다. 반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독자적인 해석과 예술성이 요구됩니다.
  18. /주/: 그런데 이러한 비교는 다른 공연예술 - 연극 등 - 의 존재라는 모순점을 안게 됩니다. 저자는 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