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EOUL_still under construction‍
wiki:cinema:誰も�...
rating
분류영화
기록일2021/01/23
별점★★★★☆

<!DOCTYPE markdown>

誰も知らない

영화는 어머니와 (아마도 각기 아버지가 다른) 네 자식들이 어느 아파트에 이사오는 시점에서 시작한다. 집주인과의 대화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들은 어머니와 맏아들 외에 다른 자식의 존재를 숨기려고 하며(나머지 자식들은 트렁크 안에 들어가 숨어 들어온다), 외부에 그 존재를 알리지 않으려는 듯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혹은 나가는 순간 그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그들만의 세계가 무너진다. 일종의 물리법칙마냥, 영화는 가족의 규칙을 관객들에게 공표한 뒤 이야기를 시작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그들이 외부 세계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일 테다. 그들 가족의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식들은 출생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의무교육을 받을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규칙이 완벽히 동작한다면, 자신들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지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의 근본적인 결함이 그들의 성공을 방해한다. 첫째, 예컨대 더 비치에 나오는 파라다이스 섬 같은 공간이 아닌 이상, 그들이 외부적인 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심지어 더 비치의 섬 역시 외부와의 교류가 없으면 지속 가능할 수 없었다.)]. 둘째, 처음부터 어머니는 그 가족-공동체-게토에서 함께 살아갈 마음이 없었다. 영화는 서서히 어머니를 퇴장시키며, 중반에 이르면 영화는 오로지 네 자식들의 이야기로 바뀐다. 정확히는, (외부와 소통하는 창구로 지정된)맏아들이 중심이 된 이야기가 된다.

영화는 관객이 예상하는 결말로 서서히 나아간다. 혹은 인물들을 죄어낸다. 남겨진 자식들, 노동이 불가능한 환경, 고갈되어가는 생활비, 무기력해지는 아이들, 균열이 가는 규칙들.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영화는 비슷한 이야기를 변주한다. 영화는 리얼리즘을 표방하지만, 정말로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라면 그들은 급격한 파국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것이 논리적인 결론이고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영화는 등장 인물인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그들의 최소한의 인간성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다소 갑작스럽게, 유키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그들을 돌보게 하는 영화의 선택은, 그러한 면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 영화가 실제 일어났던 비극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임을 기억해야 한다. 전적으로 중반부 이후의 영화는 그들의 예정된 파국에서 그들을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지를 고민한 결과물에 가깝다. 요컨대 영화는 사회가 외면하는(혹은 스스로 외면당함을 택한) 이들을 대하는 하나의 자세를 제안하고 있다.


Backlinks


wiki/cinema/誰も知らない.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3/11/06 15:28 저자 clock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