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info | |
---|---|
status | Approved |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질문들
- 책은 정지돈의 단편들을 담고 있다. 수록된 텍스트들은 대부분 다른 텍스트의 인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며, 그것들을 배열하고 관계를 엮음으로서 하나의 새로운 파편적 서사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파편을 이해하고 더 굵은 선을 잇는 것은 독자의 몫일까, 아니면 그대로 놔두고 그 파편됨 상태 그대로를 인정하는 적합할까?
- 저자가 인터뷰에서 밝히듯, 그의 텍스트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인정하는 주된 서사의 줄기가 갖는 층위를 벗어나, 그 서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그러나 실제로는 그 서사를 구성하는 데 비중을 갖는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1). 물론, 그 인물이 소설 속에서 보이는 말과 행동은 대부분 허구이다2). 그러나 작품 뒤에 붙은 방대한 참고문헌은 그 텍스트가 현실과 진실되게 맞붙어 있다고 독자를 착각하게 만든다. 이는 수많은 논픽션을 기반으로 한 픽션에서 작가가 독자를 속이는 전략과 반대 방향에서 시작하여, 그러나 비슷하거나 더 복잡한 형태로 독자를 속이는 전략이다. 그러나 이 경우 독자는 작품에서 빠져나오기 전까지 자신이 텍스트 속에서 경험하는 내용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이 윤리적 딜레마를 독자가 극복할 수 있을까? 혹은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극복할 수 있다면/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저자는 몇 개의 단편에서 memex란 개념을 제시하고 사용한다. 그런데 memex는 통상적으로 하이퍼텍스트의 전신이 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이 개념을 텍스트에 도입한 저자의 도전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Backlinks
Plugin Backlinks: 아무 것도 없습니다.
1)
“역할을 못하는데 사실은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게 너무 좋고 그런 사람들의 상황, 삶을 상상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작가의 전기를 찾아보면 그런 궁금증이 들어요. 이 작가가 소설을 어떤 연필로 썼나? 타자기를 썼다면 기종은 뭐지? 타이핑은 직접 했나? 아니면 누가 쳐줬나? 이걸 자기가 그냥 쓰면 끝인가? 우편으로 보냈나? 그럼 중간에 배달해준 사람은 누구지? 디자인은 누가 해줬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당시에도 유통해주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그건 누가 했지?” 출처
2)
“많은 작가가 실제 일을 적으면서 가명을 쓰고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말해요. 이 경우 층위가 하나밖에 안 생기죠. 이걸 뒤집어서 실재 인물을 두고 지어낸 이야기 혹은 있었던 이야기를 쓸 때 상상할 수 있는 게 더 다양하고 재밌어져요. 픽션과 논픽션이 뒤섞이는 거죠. 예를 들어 건축가 김원 선생님과 제 소설 속 김원은 기표(이름과 직업)만 같을 뿐 다 지어낸 얘기예요. 물론 때때로 실재 인물들의 실제 이야기도 써요. 다만 그럴 때는 ‘글을 읽는 사람들의 관음증적인 욕망을 충족해주기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요.” 출처]
rviw/r2022121301.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25/01/16 12:23 저자 clock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