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VIW

SEOUL‍
rviw:r202504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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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ting
분류영화
기록일2025/04/26
별점★★★★☆

반다의 방

영화를 (다소 간격을 두고) 두 번째로 본 소감은, 이 영화가 쇼트를 찍어내는 방식 - 저화질의, 무언가 기묘하게 왜곡된 듯한 영상을 맥락없이 잘라내고, 이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맥락을 만들어내는 - 이 2025년 현대의 AI 붐과 미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데 있다. 이 영화가 2000년에, 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손에 잡은 페드로 코스타 감독이 새롭게 정립한 작업방식을 갖고 만들어진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디지털 방식의 작업이 (당시에) 필름을 어떤 면에서 대체할 수 있는가 - 에 관해 논의되던 내용 중 하나는, 필름으로 영화를 찍기 위해 세팅해야 했던 의도된 풍경을 벗어나 좀더 우연적이고 예측할 수 없는 구도를 담아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영화 또한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끝나는 쇼트, 좁은 공간감을 강조하기 위한 '납작한' 클로즈업1), 서사의 흐름에 관계없는 (필름의 경제학으로는 찍지 않아도 무방한) 짧은 쇼트들의 나열 등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화질의 영화와 광학계의 불완전함으로 인한 수차 또는 왜곡 등은 이러한 목적 하에서 허용된다. 공교롭게도 AI로 이미지/비디오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사람들과 AI 자신 또한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다만 그들은 태생적 불완전함을 상술한 전략과 유사한 방식으로 가리기 위함에 가깝다. 단적으로 말해, (최소한) 이미지 생성 AI는 자신이 생성하는 이미지의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즉 어떤 맥락에 대한 텍스트를 입력받고 이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생성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것이 앞뒤 쇼트 혹은 작품 전체의 맥락에 상통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은 떨어지거나 전적으로 인간 창작자에게 맡겨야 한다. 혹은 AI를 사용하는 인간 또한 맥락없이 생성되는 이미지의 전후 맥락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미학적인 관점 뿐만 아니라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도 분석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2025년 현재 취하는 방식은 이 영화의 그것과 유사하다. 화질의 저하를 감수 혹은 의도하고 로우파이 이미지를 만들어 관객의 주의를 끌고, 통상적인 쇼트보다 시작과 끝을 더 잘라내 부자연스러운 이음매를 최소화한다. AI 영상의 또 다른 특징은 슬로우 모션 등을 포함해 일종의 롱테이크를 적극 활용한다는 점인데, 쇼트가 길어지거나 많아질수록 그 내재된 빈약함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들을 비교해가며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섬뜩한 생각은, 오히려 아트하우스 영화에서 AI의 침공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었다. 노골적으로 말해 AI 도구를 사용해 반다의 방과 같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흐린 리얼리즘적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은 이 지점이 AI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Backlinks


1)
재미있게도 이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추구하는 이미지의 방향이기도 하다. 예전에 뉴진스의 뮤직비디오를 대상으로 짧은 글을 남긴 바 있다: 링크
rviw/r2025042601.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저자 clock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