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테드 창이 1990년부터 2002년까지 발표했던 단편을 담고 있다. 여기 수록된 작품의 공통적인 특징은, 작품 속의 세계가 현실에 도래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데에 있다. 즉 작가가 그려내는 세계가 독자의 세계와 충돌하려고 할 때, 그 충돌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혹은 어떻게 피할 것인가에 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SF 소설의 가장 큰 목표라 한다면, 테드 창의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는 독자가 소설 속 세계에 다가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도망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위치에까지 도달한다. 예컨대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주인공의 고백을 여러 주변 사람들 및 공적인 푸티지에 병치시키며, 인위적 실미증에 대한 여러 논점을 다룬다. 그러나 마지막 방백에서 주인공은 이 모든 논의가 마무리되어간다고 믿는 독자의 안도가 실은 착각이며, 오히려 수많은 다른 종류의 실인증으로 끝없이 확장되어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 세계는 '우리 세대가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규정한다. 혹은 데뷔작인 '바빌론의 탑'은 끝없이 하늘로 올라가던 바벨탑이 결국 폐공간으로 이루어진 세계, 그 세계의 질서 속에서 철저히 인간의 공학적 노력만으로 야훼의 신비(라고 정의될 수 있는 무언가)를 실체화시킨 결과물임을 증명한다. 중요한 것은 소설이 그 증명을 이미 끝마쳤고, 거기에 우리의 어떠한 반론도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이다.